1,586건. 2022년 접수된 직장 내 성희롱 신고 건수입니다. 2018년 994건에 비하면 1.5배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처럼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나날이 증가하는 가운데, 기업 인사 실무 담당자들은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 원칙’에 유의하여 관련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성인지 감수성 원칙은 비록 법률에 규정된 것은 아니지만, 대법원이 2018년 처음 선언한 원칙입니다. 대법원은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내린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도7709 판결). 이는 이른바 ‘피해자다움’, 즉 ‘진정한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하였을 것’이라는 통념에 사로잡혀 피해자의 특수한 사정을 간과한 채 피해자 진술을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성인지 감수성 원칙은 직장 내 성희롱 사건 조사 시 성비위행위가 사실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에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한 직원의 진술 외에 다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이 성희롱 행위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행위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성적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할 때, 기업에서 성인지 감수성 원칙을 근거로 직장 내 성희롱 사실을 인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성인지 감수성 원칙과 관련하여 “성범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제한 없이 인정하여야 한다거나 그에 따라 해당 공소사실을 무조건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24. 1. 4. 선고 2023도13081 판결; 대상판결).

대상판결은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는 피고인이 지하철에서 여성인 피해자의 옆 자리에 앉아 어깨를 비벼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사안이었습니다. 피고인은 추행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하였으나, 1심과 2심은 피해자가 '그냥 닿는다는 느낌이 아니라 옆의 사람이 팔을 비빈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들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피고인이 비빈 시간이 좀 길었는데 대략 정거장 3~4개는 갔던 시간으로 기억한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 등을 근거로 피고인에게 추행의 고의가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유죄를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1) 성범죄 피해자 진술에 대하여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하여 보더라도, 진술 내용 자체의 합리성∙타당성뿐만 아니라 객관적 정황, 다른 경험칙 등에 비추어 증명력을 인정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2) 피고인이 일관되게 공소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피해자의 진술만이 유죄의 증거가 되는 경우에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더라도 피고인의 주장, 피고인이 제출한 증거, 피해자 진술 내용의 합리성∙타당성, 객관적 정황과 다양한 경험칙 등에 비추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는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기에 충분할 정도에 이르지 아니하여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게 하였다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하며, (3) 성범죄 사건을 심리할 때에는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하여야 하나 이는 성범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제한 없이 인정하여야 한다거나 그에 따라 해당 공소사실을 무조건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판시하면서, 해당 사안의 경우 피해자 진술만으로는 추행의 고의를 부인하는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기에 충분할 정도에 이르렀다고까지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아 2심 판결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대상판결은 성인지 감수성 원칙을 고려하면서도, 성범죄 피해자 진술만을 근거로 피고인의 추행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판결입니다.

이러한 판결 취지에 비추어,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조사할 경우 조사자는 성인지 감수성 원칙에 따라 신고인의 진술을 함부로 배척하지 않되, 진술에만 근거하여 성급히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객관적 정황 및 다양한 경험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합당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만 직장 내 성희롱 사건 조사 결과,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신고인의 진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신고인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책임을 묻는 일은 없도록 유의하여야 할 것입니다.